9 벳바게, 무화과의 집

2020. 4. 4. 16:53이스라엘 성지순례

벳바게로 갑니다.  

벳바게는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동쪽 감람산 너머에 있는 마을인데, 아랍지역에 있습니다. 

 

다마스커스 게이트 부근에는 아랍버스 정류장이 3개가 있습니다.

그 중 제일 동쪽에 있는 술탄슐리만 정류장에서 255번이나 263번  버스를 타면 벳바게로 갈 수 있습니다. 

버스에 올라타면서 기사에게 벳바게로 가는 거 맞냐고 다시 확인했더니, 빠떼르 노스떼르?라고 묻습니다. 

맞아요. 

Pater Noster는 감람산 정상에 있는 주기도문 교회입니다. 

이 버스는 아랍 마을 골목을 돌아 돌아, 벳바게를 거쳐, 파터 노스터까지 가는 버스입니다.  

오늘은 벳바게 교회에 먼저 들린 후 감람산 꼭대기로 올라갔다가 거기서부터 올드시티 쪽으로 내려가면서 감람산 부근에 있는 교회들을 둘러보려고 합니다. 

감람산에서 올드시티 쪽으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관광객들이 꼭 방문하는 유명한 교회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버스는 벳바게 교회 바로 앞에서 세워줍니다.

보아하니 벳바게 교회가 분명한데, 철문이 닫혀 있습니다. 

건물 담을 따라 뒷쪽으로 돌아가 보았지만 다른 문은 없습니다. 

너무 일찍 왔나. 

관광객도 하나 없습니다.

아마도 벳바게교회는 일반적인 관광코스에서 빠져있는 듯합니다. 

 

철문에 다가가서 손잡이를 당겨보았더니, 아, 열려 있네요.

닫혀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이미 열려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의 복, 예수님의 구원도, 이미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을, 닫혀 있는 줄 알고 되돌아가기 십상입니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도 비슷한 것같습니다. 

 

벳바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에 나귀를 빌려타신 곳입니다.  

그 사건을 기념하여 벳바게 교회 Church of Bethphage가 세워져 있습니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시간에, 교회를 여유롭게 둘러봅니다. 

꽤 소박한 교회의 강단에는 역시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마당에도 역시 나귀를 타신 예수님과 사람들을 새긴 동상이 놓여있습니다. 

예쁘고 소박한 교회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태생이 가난뱅이라 그런지, 화려하고 요란한 교회에 가면 압도되기보다 거부감이 먼저 듭니다. 

여기는 전혀 그렇지 않네요.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갔다가 벳바게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무화과 나무를 발견하셨습니다. 

무화과 나무에는 열매가 두번 열린다고 하죠. 

유월절 즈음에는 “파게 phage”라는 작은 열매가 먼저 열리는데, 이건 상품성이 별로 없어서 모두 따서 버려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 시기에 파게를 마음대로 따먹을 수 있습니다.

벳바게Bethphage라는 마을 이름도, 이 열매 “파게”의 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름이 되면 파게가 열렸다 떨어진 자리에“테에나”라는 열매가 열리는데, 이게 상품성 있는 무화과입니다. 

“파게”가 많이 열리고 그것을 많이 따 주어야만, “테에나”도 많이 열린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발견한 무화과 나무에는 “파게” 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았습니다. 

파게조차 제대로 맺지 못한 나무에서 테에나가 제대로 열릴 이유가 없습니다. 

 

- 어설픈 열매 “파게”라도 우선 많이 맺어야 할텐데. 

- 그걸 일단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어야 할텐데. 

- 나는 “파게”보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열매 “테에나”를 맺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게 아닐까. 

- 내 삶에 있어 “파게”는 무엇일까. “테에나”는 무엇일까. 

벳”파게”의 교회 마당에서, 내가 맺으려고 노력해왔던 열매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벳바게의 영문 표기가 참 헛갈립니다. 

Beit Phage, Bethphage, Bethpage, Bet-fadj

히브리어를 영어로 표기하는 것도 통일이 안된데다, 아랍어 발음은 또 다르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명들도 비슷한 형편이어서, 구글맵이나 네비를 사용할 때 애를 먹을 때가 많습니다. 

경우에 따라 적절히 바꾸어 가며 사용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벳바게에서 나와 동쪽으로 펼쳐진 모습을 바라봅니다. 

경사가 급한 긴 내리막입니다.

저 밑으로 보이는 게 바로 베다니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2마일(5리, 3km)쯤 되는 곳(요한복음 11:18)이라고 소개한 곳이죠.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던 마을, 예수께서 그녀들의 오빠 나사로를 살리신 마을입니다. 

참 가보고 싶은 곳인데,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걷기에는 좀 부담되는 거리인데다, 엄청난 내리막길로 가야 합니다.  

게다가 본격적인 팔레스타인 지역이라 체크포인트까지 있어서 나중에 버스를 어떻게 타야하는지 그것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거의 없습니다.

가보고는 싶지만, 포기하기로 합니다.

베다니,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방문을 포기하는 장소입니다. 

 

지금 돌아와 생각해보면, 그래도 거기까지 가볼껄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그리고 곧 이 생각도 욕심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내 여행의 자취라는 또 하나의 "테에나"를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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