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성지순례

8 비아 돌로로사

okpilgrim 2020. 3. 21. 20:56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고통의 길, 슬픔의 길"이라는 뜻으로, 예수님이 재판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걸어가신 길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올드 시티 안 골목길에 있습니다. 

라이온 게이트나 다마스커스 게이트에서부터 찾아가면 됩니다. 

1처부터 14처까지 기념하는 장소가 있는데, 마지막 10처부터 14처까지는 성분묘교회(Holy Sepulchre) 안에 있습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비아 돌로로사의 골목길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이스라엘은 11월부터 2월까지 우기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루살렘에 비가 내리고 있으리라고 상상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런 우기에는 비내리는 날도 당연히 많았을텐데 말이죠. 

예수님과 제자들도 어느 날엔가는 비를 맞아 쫄딱 젖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오늘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해봅니다.

 

상점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올드시티의 골목길을 걷다가, 구석에서 어느 늙은 아랍인의 커피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비를 피해 녹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습니다. 

2세켈. 대충 700원쯤 됩니다.  

아랍 노인은 걸쭉한 커피에 설탕을 섞어 휘저어 건네 줍니다. 

때가 덕지덕지 묻은 커피기구에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그 모습이 골목길과 참 잘 어울립니다.  

2000년전 어느 날에도 이 노인과 비슷한 얼굴들을 한 사람들이 이 골목을 메우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서 따뜻한 커피를 마십니다. 

간혹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에 튑니다.   

아랍 커피는 커피 가루의 걸쭉함이 입에서 그대로 느껴집니다. 

다 마시고 나면, 컵 밑바닥에 커피 가루가 잔뜩 남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 노인은, 가끔씩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희미한 미소를 보냅니다.

그 옆에서 커피를 마시다 보니, 저도 점점 이 골목에 젖어드는 느낌이 듭니다.  

 

십자가를 멘 예수님이 이 길을 그대로 걸어가시는 걸 상상해 봅니다. 

물론 당시의 골목길 바닥은 지금 이 지면의 높이보다 십여미터 가량 낮았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적어도 빌라도의 재판정부터 골고다에 이르는 이 길의 어떤 방향으로 걸으셨을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예수님의 숨가쁜 호흡이 이 근처 어디에선가 퍼졌을 겁니다. 

어쩌면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상인들이 소리지르며 물건을 파는 그런 복잡한 골목이었을지 모릅니다. 

지금보다 더욱 소란스러운 길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커피가게에서 일어나 계속 비아 돌로로사의 골목을 걷습니다.  

 

비아 돌로로사 골목길에는 1처부터 9처까지 이르는 기념 장소들이 있지만, 사실 모든 장소에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예수께서 첫번째 쓰러지신 곳(3처), 마리아와 예수님의 눈이 마주친 곳(4처),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예수님의 땀을 닦아준 곳(6처), 예수님이 두번째 쓰러지신 곳(7처), 예수님이 세번째 쓰러지신 곳(9처) 등은 성경에 근거 조차 없는 곳이라서, 다소 미덥지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곳을 “제12처”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중간에 이런 5개의 억지스러운 장소를 끼워넣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쨋든, 그래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렇게 따라왔고, 그 어딘가는 분명히 예수님이 고통 가운데 걸어가신 길일 것입니다.

그래서 비아 돌로로사는 그것을 생각하며 걷는다는 점에 의미를 둘만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각 처소를 찾아가면서 생각해봅니다. 

비아 돌로로사. 

슬픔의 길, 고통의 길. 

예수님은 유태인들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로마 군에게 잡히고 재판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채찍을 맞으며 십자가를 지고 처형될 장소를 향해 이 골목길을 끌려 가셨습니다. 

이 골목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겁니다. 

 

권력자들,

종교 지도자들, 

상인들,  

군인들, 

바리새인들,

예수님의 제자들, 

구경꾼과 군중들…  

 

오늘 내가 살아가는 골목길도 그 당시의 비아 돌로로사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내 삶 속의 골목길에는, 오늘도 예수님이 걸어가십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나 대신 죽기 위해 걸어가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오늘의 비아 돌로로사에서, 나는 어떤 사람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그게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이 골목길의 무심한 구경꾼인가.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억울한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처한 이 상황을, 아무 느낌이나 울분도 없이 그저 구경만 하고 있는 관광객인가.  

 

나는 이 골목길의 상인인가. 

그런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모든 것을 외면하고 오직 이익을 얻기 위해 물건을 파는 것에만 충실하는, 그런 상인인가.  

 

나는 이 골목길을 걷다가 영문도 모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누어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인가.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로마 군인의 강요 때문에, 상황을 분명하게 알지는 못한채 그저 엉거주춤 십자가를 대신 지고 있는 그 사람 시몬인가. 

 

나는 예수 팔아 자기 목적을 달성했던 가룟유다인가.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담은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는 목사로서의 나만의 보람이나 자랑을 누리고 싶은 그 가룟유다인가.  

 

나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도망치기 바쁜 제자들 중 하나인가. 

주님으로 고백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 제자들 중 하나는 아니던가. 

기독교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한 그 제자는 아닌가. 

  

나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바로 그 유태인들 중 하나가 아닌가. 

나는 그 누군가 억울한 사람의 상황을 보고서도 그것에 책임지지 않으려고 손씻은, 그 빌라도가 아닌가. 

나는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 누군가의 손발에 못을 박은, 그 로마병사가 아닌가. 

나는 누명쓰고 좁은 길을 걸어가는 누군가의 옷을 벗겨 그걸 찢어 나누어 가진, 그 군인은 아니던가. 

 

저는 분명히 그 누군가 중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 

 

 

찬 겨울비가 내리는 비아 돌로로사를 걸으며 이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눈가가 쨍하게 아파옵니다.

김이 서려 뿌옇게 된 안경알에 물방울까지 흘러내립니다. 

빗물 때문인지, 입김 때문인지, 땀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안경과 얼굴과 몸이 온통 빗방울과 입김과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채, 비에 젖어 더 미끄러워진 비아 돌로로사의 골목길을 걸어갑니다. 

그렇게 비오는 예루살렘 올드 시티의 골목길을 마구 헤매던 그 날 아침의 처절한 묵상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