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마가의 다락방

2020. 3. 17. 21:22예루살렘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탔습니다.

자파 게이트 앞에 내려 시온 게이트까지 걸어가보려구요.

자파 게이트 앞에 가느냐고 물었기 때문에 당연히 거기서 멈추어줄 줄 알았는데, 운전기사는 아무 소리도 없이 그냥 지나칩니다. 

다급하게 스톱 버튼을 눌렀지만, 운전기사는 그 다음 정거장에 세워주었습니다.

골짜기를 지나 올드시티 건너편 산기슭까지, 한참을 더 갔습니다.

 

불친절한 운전기사놈 덕분에 힌놈 골짜기와 키드론 골짜기 사이를 제대로 걸어봅니다. 

골짜기가 참 깊습니다.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다시 시온 게이트까지 오르막 길을 다 걸어가니, 속옷이 땀으로 다 젖었습니다. 

 

골짜기 너머로 보이는 올드시티 남쪽의 모습이 왠지 정겹습니다. 

 

시온 게이트에 이르기 직전에 마가의 다락방이 있습니다. 

아랫층은 다윗왕의 무덤이라고 해왔었는데, 나중에 착오라는 게 드러났다고 합니다. 

 

시온 게이트까지의 갈색 실선은 제가 걸어본 길입니다. 거의 30분 이상 걸렸습니다.  

 

마가의 집은 시온산 거의 꼭대기에 있었고, 가야바의 집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의 집안은 아마도 높은 지위를 가진 가정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답니다. 

 

마가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상상했습니다. 

마가복음의 문장이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 문법상의 오류가 더 많다는 점이나, 문장 표현의 단순함 같은 것 때문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가 제사장 가야바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진 집안의 출신이라고 추측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살짝 놀랐습니다.  

그런 "집안의 배경"이 동지들과의 관계에 있어 도리어 걸림돌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중에 바울 사도에게 배척 당하고 바나바와 함께 다니게 된 사연 속에도,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에는 그런 느낌조차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가는 자신에 관한 사연이나 정보를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가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집안인지 등등을 지금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저녁식사를 할 수 있도록 자기 집을 제공했습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배경도 바로 이 다락방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떡과 포도주를 나누고 의미있는 대화들을 나눌 때, 마가는 저쪽 모퉁이에 가만히 쪼그려 앉아서 그 대화를 들었나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과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모이도록 주선한 것도 마가였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면서 성령이 강림할 때에도, 마가는 옆에 있으면서 함께 그 일을 기뻐했습니다.     

그 마가가 제공한 집, 그게 여기 이 근처 어디였다는 겁니다.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릴 때 우리 집에 있던 다락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저는 의자를 놓고 벽 위쪽에 있는 다락방 문으로 기어올라갔습니다.

전등불도 없는 다락방 안에는 오래 전에 버려진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기름등잔과 재봉틀 바퀴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얼마나 좋은 장난감이었는지요.  

마가의 다락방도 그런 곳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은 사실 그런 "다락"이 아니더군요.

그러고 보면,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기도했다는 곳이니, 제가 기억하는 다락과 비슷할 리 없습니다. 

 

마가의 다락방 건물 내부는 횡했습니다. 

관광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각인지, 방문객도 아무도 없습니다. 

시람들이 북적이지 않는 이 시간이, 얼마나 한가롭고 좋은지요. 

나홀로 여행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16세기 오스만투르크가 점령하면서 모스크로 변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고딕 형태의 창에 아랍문양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 요상한 창문이 있습니다. 

 

기둥에 새겨진 펠리칸 조각도 특이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인간에게 나누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라 합니다.  

펠리칸은 자식에게 먹일 먹이가 없을 때, 자기 가슴을 뜯어 피를 흘려 자식에게 먹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펠리칸은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하는 새가 되었습니다. 

두 마리의 새끼 펠리칸이 어미의 가슴에 주둥이를 대고 있는 모습이, 이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사람들은 각종 성인들을 위한 성당들을 그렇게 요란하게 지으면서, 마가의 다락방 건물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나 봅니다. 

사실 이 집이 실제로 마가의 집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부터 여기에 작은 예배 처소가 있었고, 12세기 예루살렘에 도착한 십자군들이 그것이 마가의 집이라고 믿어 예배당을 지었고, 무슬림이 그걸 점령하고, 세월이 흐른 후, 누군가가 위치나 구조로 보아 바로 그 집이 만찬을 하기에 참 적절했을꺼라는 추측과 함께 Cenacle, 또는 Upper Room이라고 이름 붙여진 거라 합니다. 

그걸 우리는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덧번역한 거구요. 

 

하지만, 크게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면, 성지 순례의 대상이 되는 이스라엘 전역의 교회들 상당수가 마찬가지 형편이죠.

성지 순례는 그렇게까지 정확한 고고학적 고증을 꼭 필요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씌여진 이야기의 배경이 된 장소 또는 그 근처에 가서, 그 이야기에 다시 푹 젖어 보려는 거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마가의 다락방은 제게 또 하나의 온전한 묵상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요란한 치장이 없이 그렇게 버려진 듯 소박한 건물이 더욱 좋습니다. 

마가복음은 조금의 장식이나 의도도 없이, 신학적 해석도 없이, 순수하게 씌여진 복음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홑이불을 버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친 것을 고백하는 마음(막 14:52)처럼, 솔직하게 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게 마가의 인품과 성격을 반영하는 것 아닐까요.  

그 점에서 이 건물은 매우 “마가”스럽다는 느낌이 듭니다.

 

소박하게,

솔직하게,

요란 떨지 말고,

사람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주님만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바쳐가면서, 

그렇게 살자. 

 

텅빈 건물 구석 바닥에 다리를 뻗고 앉아서, 마가의 마음을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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