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베데스다 못

2020. 3. 14. 23:10이스라엘 성지순례

라이온 게이트(Lion Gate)에 갑니다. 

올드시티의 북동쪽에 있는 성문입니다. 

이 게이트에서 밖으로 나와 키드론 계곡을 건너면 감람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옵니다.

물론 이 게이트에서 출발하여 키드론 계곡을 지나 감람산 꼭대기까지 가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지도로 보면 가까와 보이는데, 막상 가보면 그렇게 올라갈 엄두가 안날껍니다. 

 

라이온 게이트에서 성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게이트는 자동차 한대가 빠듯하게 지나갈 정도의 넓이입니다. 

 

마침 트럭 한대가 게이트를 지나가는데, 팔레스타인인 듯한 운전기사가 저를 보고 마스크 쓰는 시늉을 하며 웃습니다. 

무슨 의미의 웃음인지 짐작이 갑니다. 

“너, 중국인이잖아. 코로나 바이러스 덩어리. 그러니까 마스크 써야지.” 

이런 메시지인 모양입니다. 

그저 함께 마주 웃어주었습니다. 

뭐, 대단한 일인가요.  

저 청년이 무지해서 그런 것이고, 그것 때문에 내가 화낼 일도 아니지요. 

어떤 사회에서나, 심지어 지성인들이 모인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조차도, 무지한 사람들이 무식하게 싸우는 경우가 많습디다. 

사소한 일에까지 일일이 정의를 따지며 싸우는 것은, 때로 똑똑하고 의로와 보이지만 결국은 허망한 짓이더군요. 

 

 

게이트를 지나 조금만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성안나교회(Church of St. Anne)가 나옵니다. 

이 지역은 성모 마리아가 태어난 곳으로, 마리아의 어머니인 “안나”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교회라고 합니다.  

카톨릭 교회들의 마리아 사랑은 그녀의 어머니에게까지 미치는 모양입니다. 

 

입구에서 입장료 10세켈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대부분의 교회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 여기만 입장료가 있습니다. 

입장료를 받는 직원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습니다. 

'알아서 뭐하랴, 혹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묻는 걸까..' 조심스런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니, 직원은 뒤적거리다가 한글로 된 팜플렛을 꺼내줍니다. 

- 아, 그래서 물은 거구나. 

잠깐이지만 오해한 게 미안해집니다.  

팜플렛에는 “성안나교회 벳자타”라고 씌어있습니다. 

 

베데스다 못.

마리아에게도 안나에게도 별로 관심없는 제가 이 교회에 온 이유입니다. 

 

성안나교회는 깨끗하게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십자군 시대에 지어져 큰 변경없이 유지되어 온 건물이라고 합니다. 

교회 건물 입구에는“No Explanation”이라는 팻말이 크게 붙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거의 모든 유명 교회마다 건물 입구에 그런 팻말이 붙어있습니다. 

 

투어 가이드들은 늘 말이 많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어야 여행객들이 만족한다고 생각하나봅니다. 

들을 땐 뭔가 많은 지식을 얻은 듯한데, 버스에 올라타면 즉시 잊어먹는게 그들의 “설명” 아니던가요. 

패키지 여행에서 돌아와 가이드의 설명을 기억할 수 있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가급적 패키지 여행을 회피하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주일 예배의 설교도 그런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배 중에는 뭔가 감동도 받고 나름대로 결단도 하지만, 교회 문을 나서면 까맣게 잊어먹는 게 “설교” 아니던가요. 

만약 그렇게 되면 목사님도 투어가이드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많은 자료를 모으고 필요한 것을 골라내 전달하지만, 정작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만 듣고 부담없이 흘려보려 금방 잊어버릴 뿐인, 그런 메시지를 공허하게 전달하는 투어가이드 말입니다.  

- 하지만, 누군가는 내 메시지를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거나 실행하는 사람이 있을꺼야...

마음을 다져봅니다.  

 

성안나교회 안을 둘러보고 있던 대여섯명의 서양 남녀들이 강단 앞에 가더니 둥글게 모여섭니다. 

그리고 갑자기 아카펠라 중창을 시작합니다. 

높은 천장에 울리는 목소리의 조화가 참 아름답습니다. 

보통 솜씨가 아닙니다. 

10여분간의 찬양이 끝나자 주임 신부인 듯한 분이 그들에게 다가가 감사하다고 인사합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뉴욕의 어느 교회 성도들이라고 합니다. 

모두들 인상이 참 선해 보입니다.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연령층도 다양합니다.   

금방 잊어버릴 투어 가이드의 해설보다는, 가슴 울리는 이 사람들의 찬양이 훨씬 은혜롭습니다. 

 

교회 뒷쪽으로 돌아가면, 거기에 베데스다 못이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큽니다. 

베데스다 못의 저수 장소는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북쪽 못에 물이 차면, 물을 남쪽 못으로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북쪽 못의 물이 내려와 남쪽 못 수면이 움직이게 되면, 남쪽 못가에 모여있던 환자들은 그 때마다 치료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합니다. 

그 당시에는 문둥병도 공기로 전염된다고 믿었답니다. 

그래서 늘 서쪽, 지중해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성 밖으로 나가는 동쪽 문, 즉 라이온 게이트에만 문둥병자와 중병환자들이 머물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실제 유적들 대부분은 땅 밑에 있습니다. 수천년이 지나는 동안 지면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그런 환자들이 북적이는 베데스다 못에 가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밖에는 더 기대할 수 없는 병자들, 죽음을 앞둔 병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38년된 한 병자를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왜 거기에 가셨을까요. 

당연히 안식일 하루를 조용히 거룩하게 지냈을만 한데요. 

 

기적이 일어나는 것밖에는 더 치료를 기대할 수 없는 병자, 혹시 나는 그 병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보균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늘 긴장해야겠습니다. 

 

나는 예수님처럼 '치료를 포기한 사람들'을 찾아가고 있는지 질문해 봅니다.

내가 기적을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위해 함께 아파하며 기도할 수 있지 않았던가.

나는 안식일에도 "그저 조용히 거룩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일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주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누군가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겠습니다.    

 

베데스다 못 주변은 산책하기에 적절한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저녁 햇볕이 조금 남아 있는 벤치에 앉았습니다. 

햇살이 교회 꼭대기 십자가를 벗어날 때까지, 베데스다 못을 내려다보며 침묵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 벤치에 앉아 저녁 햇볕의 변화를 느끼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마지막 햇살이 출렁거리면, 보균자일지 모르는 제게도 혹시 치료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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