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마스커스 게이트

2020. 3. 11. 13:04이스라엘 성지순례

예루살렘 도착 첫 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다마스커스 게이트부터 가봅니다.

도중에 점심이라도 먹을까 하여 중간에 있는 아랍 식당 앞에서 기웃거려 보았습니다. 

영어라고는 하나도 씌어있지 않고, 말을 붙여봐도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식당 손님들도 모두 팔레스타인 현지인들뿐인 것처럼 보입니다. 

도대체가 이 곳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지역이 아닌가봅니다.  

자파 스트리트에 있는 숙소를 잡을 껄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들어가 앉아서 메뉴판을 보며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걸 주문했습니다. 

아랍어로 씌어있어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히브리어로 씌어 있어도 마찬가지겠지만. 

45세켈. 15000원 정도 되는 금액입니다. (나중에 보니 그다지 비싼 건 아니더군요. 이스라엘에서는 외식비가 꽤 부담스럽습니다.)

피타빵, 후무스, 양념없이 삶은 고기, 팔라펠 세개, 양파와 토마토 몇조각, 요구르트, 그리고 수프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먹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점원에게 어떻게 먹느냐 물어보니 영어로 대답해줍니다. 

“Mix, mix!” 

빵을 찢어 후무스에 찍어 먹고, 고기도 짤라먹고, 간간히 수프와 요구르트를 떠먹었습니다. 

맛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 살기 위해 먹자. 

- 오늘은 그저 탄수화물과 단백질로 배를 채운다는 게 중요하다. 

- 하나님은 그동안 한껏 까다로와진 내 입을 낮추기 원하시나보다. 

 

다마스커스 게이트 바깥쪽 길 건너편은 온통 아랍인들의 시장입니다. 

게이트 안쪽에도 시장이 길게 이어지지만, 거기에는 관광객에게 상품을 파는 상점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이쪽 상점들은 대부분 실제로 생활하기 위한 과일이나 야채, 기타 필수품들을 팝니다. 

아랍 버스 종점이 이 부근에 3개나 몰려 있어서, 이 게이트 앞길은 하루종일 차량이 밀립니다. 

 

길가 수레에서는 예루살렘 베이글도 마구 쌓아놓고 팝니다.

뉴욕 베이글은 굽는 방식이 특이해서 단단하고 쫀득하지만, 예루살렘 베이글은 그것보다 크고 부드럽다고 합니다.

이름만 베이글이지 결코 같은 종류라고 볼 수는 없다고 합니다. 

맛이 궁금했지만 먼지가 휘날리는 길에서 하루종일 먼지가 덮였을 빵을 살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습니다. 

유심칩을 파는 가게도 두어 개 보였습니다. 30일간 100G 데이터와 통화가 가능한 선불칩을 80세켈에 구입했습니다.

여권 확인도 없이 그냥 끼워줍니다. 

   

<자유여행자를 위한 팁> 

“후무스”는 병아리 콩을 삶아서 으깬 것만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랍 식당에서 “후무스”를 주문하면, 피타빵 2개, 팔라펠 3조각, 토마토 양파 몇 조각, 그리고 찍어먹을 수 있는 후무스까지 줍니다. 피타빵을 갈라서 안쪽에 후무스를 바르고 그 사이에 팔라펠, 토마토와 양파를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기도 하고, 각각을 따로 먹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양념이 강하지 않아서 먹을만은 합니다.    

 

다마스커스 게이트(다메섹 문)에 들어섰습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성문 중에서 제일 보존상태도 좋고 멋진 문이라고 합니다. 

유태인들은 지금도 "세켐 게이트"라고 부르는 문입니다. 여기서 북쪽 방향으로 가면 (지금의 웨스트 뱅크 지역 안에) "세겜"이 있어서 그렇게 부른답니다.

 

와, 드디어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관광 시작입니다. 

이 성벽이 바로 그 예루살렘 성벽 아니던가요. 

 

16세기에 개축된 것이라고 하지만, 벽돌 하나하나의 색깔과 질감은 훨씬 이전의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역자로 꺾여있는 성문에 들어서니 골목 초입부터 복잡한 시장이 시작됩니다. 

이 길은 cardo라고 불리우는 도로로, 곧장 시온 게이트까지 이어지는 내리막 길입니다. 

옛날에는 고속도로 6차선 가까운 넓은 길이었다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지 넓지는 않습니다.

  

골목 양편과 가운데 모두 아랍인들의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과일과 야채, 볼것도 없는 값싼 장식물, 싸구려 옷가지, 60년대 한국에서 먹던 정도의 간식류들. 원색의 사탕들, 뭐 그런 것들입니다. 

천천히 구경할 것도 별로 없습니다. 

 

 

스카프를 머리에 쓴 여자들은 팔레스타인 인일 것이고, 키파를 쓴 남자들은 유태인이겠죠. 

그러나 그 외의 사람들은 어느 쪽인지, 그저 관광객인지, 구별되지 않습니다. 

구태여 구별할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의 이 사람들은 그 오랜 역사를 채워온 그 누군가들의 후손들입니다. 

앞으로도 이 지역을 살아갈 것이며, 이 벽돌 건물을 남기고 또 죽어갈 사람들입니다. 

2000년전부터 서서히 쫓겨나 전 세계를 떠돌아 다니다가 20세기 들어서야 돌아온 유태인들도 있고, 1400년전부터 서서히 이 곳으로 이주해와 정착한 아랍인들도 있습니다.

섣불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억울함을 주장하거나 유태인들의 정당성을 일방적으로 옹호할 수도 없을 겁니다. 

수천년 동안 하나님이 만들어오신 역사의 현장일 뿐입니다. 

앞으로도 또 어떻게 변해갈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살짝 소름이 돋습니다. 

하나님이 여기에만 역사하신 것은 아니겠지만, 하나님이 손길과 호흡이 묻은 역사의 최전방에 온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성지를 방문하는 이유가 이런 데 있나봅니다. 

 

곳곳에서 검은 군복을 입은 이스라엘 병사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습니다. 

들고 있는 무기를 얼핏 보아 중무장을 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습니다. 

꽤나 편한 자세로 서서, 자기들끼리 즐겁게 대화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현지인들에게서 들은 바로는, 검은 군복을 입은 병사들은 의무 복무 중인 청년들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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