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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기쁨주기
옛친구에게 연락해서, 그 친구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 친구는 사업에 실패해서 작은 빌라로 이사한데다, 뇌출혈로 몸의 왼쪽이 마비되었습니다. 여러 달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일로 그 친구를 찾아간다는 걸 미루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저런 일"이란 건 다 제가 만든 핑계였습니다. 우선순위가 밀렸다는 의미였고, 그건 마치 강도만나 길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 멀찌기 피해간 제사장이나 바리새인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막상 그렇게 약속하고 가는 마음은 참 즐겁습니다.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가는 한시간 반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종로3가에서 갈아타는 김에, 종묘 건너편 좁은 골목 작은 국수집에 가서 비빔국수 하나를 먹었습니다. 값싸고 맛도 좋습니다. 주인 아주머니의 인상도 너..
2024.01.17 -
(7) 바라홀까 시장
셋째날, 개인 QT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 땅에 나를 데려오신 것,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미흐리굴과 영적 교제를 나누고 그녀의 사역을 직접 보고 느끼게 하신 것, 그녀가 뿌리고 있는 믿음의 씨앗을 보면서 나의 신앙까지도 돌이켜 보게 하신 것, 또 나의 교만과 모든 내 문제의 사치스러움을 깨닫게 하신 것, 이 땅과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영광을 허용하신 것, 모든 것이 감사한 아침이다. 아침 식사후, 미흐리굴은 러시아어 및 아랍어로 된 성경 및 책자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위구르 문자가 따로 없기 때문에, 위구르인들은 러시아 문자나 아랍문자를 빌려서 자기들의 언어를 표시한다고 한다. 아직 성경 전부를 위구르 언어로 번역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성경(그들의 말로 "인질"이라고 한다..
2023.03.16 -
(6) 위구르 가정의 저녁식사
저녁에는 크라스나폴라의 기독교인 3명 중 한분인 리따 헤데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헤데"는 위구르말로 "아주머니"라는 뜻이다. 웃으면 커다란 앞니의 금니가 모두 드러나고, 농담을 좋아하며 목소리가 큰, 여장부 스타일이다. 카자흐인들과 달리 좌식문화를 가진 그들은, 손님이 오면 방바닥에 식탁보를 깔고 식탁을 차린다. 리따 헤데는 가지피망 볶음, 양배추무침, (한국사람들이 좋아한다 하여 준비한) 샐러드, 위구르 전통 빵인 "난"과 쵸콜렛 과자 등을 내어놓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 주인이 사발에 홍차와 유사한 "차이"를 따라 돌리면, 맨 안쪽에 앉은 연장자에게까지 손에서 손으로 사발을 옮기고, 찻사발이 빌때마다 다시 채워준다. 서너시간 이상 섭씨 36도의 땡볕에서 걸었던지라, 차이는 물론, 모든 음식이 그..
2023.03.16 -
(5) 크라스나폴라와 할머니
크라스나폴라는 "붉은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위구르인 마을이다. 가을에 붉은 들꽃이 피면 온 들판을 덮어 땅 전체가 붉게 보이기 떄문에, 그로 인해 생겨난 지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단다. 크라스나폴라는 실로 가슴아픈 지역이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폐허같은 마을, 모두 잠든 것 같은 마을, 아무 소망도 생기도 없는 사람들의 마을, 이런 것들이 처음 느낀 인상이었다. 이제는 예수밖에 이들을 도와줄 존재가 없고, 예수만이 유일한 소망이 된 이 가난한 상황이, 오히려 그들에게 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서 만나는 어린이와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모두들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이었다. 손길가지 않은 척박한 들판지역에 그나마 몸을 뉘일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카자흐스탄 국..
2023.03.16 -
(4) 단기선교 여행의 시작
눈을 뜨니 아침 8시. 팀원들 모두 피곤했던 모양이다. 한국시간으로는 오전 10시. 비행기로 10시간이나 걸려 날아왔는데 한국과의 시차가 2시간밖에 나지 않는다는 게 희한하다. 창밖을 내다보니 우선 눈덮힌 거대한 산 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중국과의 경계인 텐샨산맥이다. 카자흐스탄 위구르인들이 떠나온 곳, 중국 신장이 그 산 너머에 있단다. 신장에는 약 900만명, 카자흐스탄에는 약 100만명의 위구르인들이 살고 있다. 주변에는 몹시 남루한 아파트들 뿐이다. 창문 틀을 보니 한 오십년은 족히 되었을 것 같다. 바깥에는 정리되지 않은 나무 몇 그루, 흙바닥, 그리고 버려진 듯한 자동차 몇 대가 보인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미흐리굴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일주일간의 일정과, 위구르인들의 문화, 그들의 현재..
2023.03.16 -
(3) 알마아타 도착
아침에 출발한 비행기 창으로는 계속하여 강렬한 햇빛이 쏟아졌다. 창밖으로 눈덮힌 산맥이 점점 가깝게 보이고, 꽤나 삭막해보이는 땅과, 이윽고 나무가 곳곳에 무성한 집동네가 보이다가, 비행기는 금방 착륙했다. 어둑어둑해지는 공항 활주로를 벗어나 어느 정도 달리던 비행기가 멈추어 서더니, 엔진뿐 아니라 전등까지도 모두 꺼졌다. 기내는 갑자기 깜깜한 찜통이 되어버렸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승객이 내리는 기색이 없다. 창문을 내다보니, 누군가가 경찰들의 호위 아래 꽃다발을 받으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귀빈인 모양이다. 행사가 다 끝날 때까지 우리는 깜깜한 비행기 속에서 땀 범벅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한참만에야 비로소 비행기 출입구가 열렸다. 트랩을 내려오니, 유난히 험악할 얼굴을 한 경비병들이 극히 불량한 자세로..
2023.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