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막벨라 동굴

2020. 5. 23. 17:09이스라엘 성지순례

오늘은 헤브론으로 갑니다.

막벨라 동굴이 있는 곳이죠.

 

헤브론은 West Bank 지역 내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정도밖에 안되는 거리라서, 버스를 타고 갔다오기로 합니다. 

 

예루살렘 중앙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것은 그래도 쉬웠습니다. 

트램만 타면 바로 터미널 앞에 내립니다. 

터미널 건물의 3층에 가면, 381번 버스를 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6번 플랫폼에서 381 이라는 숫자를 찾으면 오케이. 

 

이 버스는 이스라엘 버스라서, 중간에 정차하지 않은채 곧장 헤브론 유태인 지역으로 갑니다.

창문은 물론 철창으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헤브론은 생각보다 큰 도시였습니다. 

대부분 아랍지역처럼 보이는 남루한 거리를 지나, 유태인 주거지로 보이는 깨끗한 집들이 있는 도로에 들어섭니다.  

버스는 유태인 지역 골목길을 돌고 돈 후, 마지막으로 막벨라 동굴 건물 바로 앞에 세워줍니다. 

 

건물 입구에는 이스라엘 군인 둘이 지키고 있지만 별 달리 저지하는 일은 없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정통 유태인들이 검은 정복을 갖춰입고 왔다갔다 하는 것 외에, 무덤이나 동굴 같은 걸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유태인들이 커다란 벽장 앞에서 절하며 기도하고 있는 게 보입니다. 

그게 혹시 아브라함의 동굴인가 싶습니다. 

 

 

외국인과 말섞기 싫어하는 듯한 유태인을 억지로 붙들고 그 벽장 안에 뭐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도하, 도하”하고 답변합니다. 

영어를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 "도하"가 뭐지? 

인사말은 아닐꺼고, 뭐 유명한 건가본데. 모르겠습니다. 

계속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제가 딱해 보이는지, 평상복을 입은 유태인 남자가 다가와 “토라”라고 말해줍니다. 

도하... 아, 토라 torah.

(얘네들의 r발음은 프랑스어의 r발음과 비슷합니다. 목젖을 심하게 떱니다. 거의 ㅎ으로 들릴 정도로) 

벽장안에 토라가 들어 있답니다. 

- 이건 아니잖아. 

 

그 곳을 다시 나와 건물 복도를 샅샅이 찾아다녔지만, 결국 아무 것도 더 발견할 수 없습니다. 

건물 입구로 다시 나와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묘가 어디 있느냐고. 

군인들은 일어나서 따라오라고 합니다. 

조그만 철창 창문 앞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킨 후, 서둘러 입구로 되돌아 갑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희뿌연 유리창 안에는 작은 방이 있고, 커다란 천으로 덮은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게 아브라함의 묘랍니다. 

조그맣게 Patriarch Abraham이라고 적혀있는게 이제야 보입니다. 

그 이상은 찾아볼 수도 없고,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책이나 인터넷을 뒤졌어도, 가면 모든 것을 당연히 볼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되어 있기에 그런줄만 알았을 뿐이죠.  

하지만, 특히 (유태인 구역의) 막벨라 동굴은 그렇지 않습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창문으로 들여다보고 나니, 별 감동 조차도 없습니다. 

 

건물을 나서면서 생각했습니다. 

- 여행 가이드가 이래서 필요한가보다. 아니면, 준비를 더 열심히 할껄. 

 

어차피 이 족장들(patriarchs)의 무덤은 사실 이 곳 깊은 땅굴 속 있었습니다. 

뼈도 물론 찾지 못했답니다. 

그나마 이 동굴을 발견한 것은 이스라엘 독립 이후라니까요. 

그러니, 후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가묘 하나하나를 찾아보는 게 꼭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됩니다. 

 

헤브론. 

유태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마음의 고향같은 곳입니다. 

아브라함 부부, 이삭 부부, 야곱 부부 이들이 잠든 이곳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구원하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이 유태인들을 지켜온 믿음의 근거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게도 이 곳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왠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유태인 지역의 건물 앞에는 조용한 정원이 있었습니다.  

이슬람 지역으로 들어가기 전, 그 정원에 잠깐 앉아서 기도했다. 

- 이 곳에 묻혀있는 이 믿음의 조상을 통해 제게까지 약속을 주신 하나님, 그 약속을 믿고 살아갑니다.

- 이 약속의 믿음을 죽는 날까지 지켜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요. 

 

사진 왼쪽 높은 탑 있는 부붕이 이슬람 점령지역

같은 건물이지만, 이 건물의 반쪽은 이슬람 점령지역입니다.

그 쪽으로 가려면 이 건물에서 빠져나와 반대쪽에 있는 이슬람 검문소를 거친 후, 다시 그 쪽의 건물 입구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슬람 구역으로 통하는 철창검문소에 들어가면, 출입국절차에 버금가는 심문을 받습니다. 

- 어디서 왔냐. 

- 한국. 

- 종교가 뭐냐. 

- 기독교. 

- 가방 안에 무기같은 거 없냐. 

- 없다.  

 

깐깐해보이는 표정의 팔레스타인 여군이 제법 매섭게 질문하지만 심각한 내용은 별로 없습니다. 

검문소의 다른 줄에서는 소란이 일었습니다. 

다른 팔레스타인 여군이 어느 서양여자의 가방에서 책을 하나 꺼내어 이거 종교서적 아니냐고 목소리 높여 따집니다. 

본인은 여행 가이드라고 주장하고, 서로 목청을 높입니다. 

가방 안에 있는 책의 종류까지 금지시키기에 이른 그들의 복잡한 역사와 감정을, 제가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을까요. 

 

검문소를 지나면, 자그마한 기도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자들의 기도공간이랍니다. 

입구에서 착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인사하며 반겨줍니다.

커피를 마시고 있던게 왠지 미안한지, 커피 한잔 마시겠느냐고 묻습니다.

착한 아줌마.

괜찮다고 웃음으로 대답합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이슬람 사원이 있습니다. 

홀 가운데 무언가를 가린 천막이 두 개 보입니다. 

- 그래, 이걸꺼다. 

 

마침 그 옆에는 목걸이 카드를 달고 있는 팔레스타인 아가씨가 서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물어보니, 준비했다는 듯 영어로 상세히 설명해 줍니다. 

이게 이삭의 묘, 이게 리브가의 묘, 저쪽이 아브라함 묘, 저쪽은 사라의 묘. 

등잔을 내려보내는 동굴 통로도 보여주면서 이 밑에 동굴이 있다는 이야기도 해줍니다. 

이스라엘의 다얀 장군이 팔레스타인들 몰래 이 통로로 소녀를 간신히 내려보내서 그 밑에 있던 동굴을 발견했다는, 바로 그 통로입니다. 

이슬람 구역의 막벨라 동굴에서는 가이드가 필요없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묻자, 선뜻 포즈를 취해줍니다. 

 

 

그나마 이슬람교가 구약성경의 족장들을 믿음의 조상으로 믿고 있다니, 건물은 나뉘었어도 헤브론 족장들의 무덤이 이렇게 관리되고 있는 거겠죠.  

막벨라 동굴을 모두 둘러 보았으니, 이제 베들레헴으로 갈 차례입니다.

베들레헴은 헤브론과 예루살렘 중간쯤에 있으니, 거기 들렀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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