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베들레헴 - 예수탄생교회

2021. 4. 9. 00:18이스라엘 성지순례

막벨라 동굴을 모두 둘러 보았으니, 이제 헤브론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베들레헴은 성지여행자로서 빠뜨릴 수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한 곳일 뿐 아니라, 다윗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이고, 나오미와 룻이 돌아온 곳입니다. 

가보고 싶은 곳이 몇군데 더 있지만, 헤브론이나 베들레헴 모두 웨스트뱅크지역이라 교통편이 마땅치 않습니다. 

 

사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헤브론 내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중앙 버스 스테이션으로 가서, servees taxi를 타면 된답니다. 

지도상 거리가 제법 되기는 하지만, 경험삼아 걸어가보기로 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듯 고요한 동네길을 20여분을 걸어서야 비로소 팔레스타인으로 통하는 철문이 나왔습니다. 

철창만 있고 검문은 따로 하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서자마자 시끌벅적합니다. 

중앙 버스 스테이션까지 가는 길은 그냥 모두 시장처럼 보입니다. 

신발도 팔고, 옷가지, 가방.. 등등 정말 잡다한 물건들을 파는 가게가 계속됩니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소리지르고, 종로3가 뒷골목 같은 분위기입니다. 

 

길거리 리어카에서 여러가지 간식을 팝니다. 

노란 콩을 파는 리어카들이 유난히 많기에, 어느 상인에게 조금만 맛보게 해달라는 시늉을 하니, 한주먹 집어줍니다. 

껍질을 벗겨 먹는다는데, 특별한 맛이 없었습니다. 

옥수수와 흰콩 중간쯤 되는 맛입니다. 

 

또 20분여를 걸어서야 헤브론 중앙 버스 스테이션인 듯한 곳이 나왔습니다. 

영등포 네거리처럼 (규모는 훨씬 작지만) 더욱 많은 가게와 수많은 차량과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여기에서 베들레헴 가는 servees taxi를 타면 된다는 것까지만 조사했지, 그걸 도대체 어디서 타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택시 운전수들에게 물어보니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기는 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 앞으로 가면 장사꾼들과 리어카들 뿐, 택시 비슷한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servees라고 쓴 노란 승합차들이 왔다갔다 합니다. 

그래 이거다 싶습니다.  

그 중 한대를 불러세워 운전수에게 "베들레헴?" 하고 물었더니, 그 운전수는 바로 뒷쪽에 있는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그 건물 앞으로 갔지만, 도대체 뭘 타라는 건지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속상하고 난감합니다.

아랍어는 읽을 수조차 없고,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습니다. 

 

그저 관광하는 셈 치고 그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잡한 통로를 누비며 한참을 들어가다 보니, 건물 뒷쪽으로 툭트인 공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그 공간 한쪽 편으로 아까 보았던 것과 같은 노란 승합차가 힐끗 보입니다. 

반가와서 달려갔더니 여기에 그 노란 승합차들이 많이 있습니다. 

버스 터미널 같은 곳입니다. 

와, 그게 여기였구나. 

 

사람들이 타고 있는 어느 승합차를 발견하고 운전수에게 다가가서 베들레헴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 대신 사선 방향의 윗쪽을 가리킵니다.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지만, 벽밖에 없습니다.

날 놀리는 건가 싶습니다.  

못 알아듣는 제가 딱하게 보였는지, 옆에 있던 청년 하나가 나를 데리고 윗층으로 올라갑니다. 

아, 그게 한 층 더 올라가란 뜻이었구나. 

와우. 거기도 또 노란 승합차들이 우글우글합니다. 

베들레헴 가는 승합차는 여기서 출발하는 겁니다. 

이거 찾느라고, 거의 한시간 가까이 바로 요 근방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헤브론에서 베들레헴은 그다지 멀지 않았습니다. 

차비는 10세켈.  

버스를 탈 때 차비를 내는 사람도 있고, 내릴 때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운전기사는 그걸 모두 기억하고 있는 듯도 하지만, 사람들 각자가 스스로 잘 지키는 것 같습니다. 

 

살짝 졸다가 지도를 보니, 베들레헴 가까이 온 것 같습니다. 

운전수가 거울을 보며 내게 소리칩니다. 

“베들레헴, 베들레헴” 

다 내리는 줄 알았더니, 저만 내립니다.   

운전수 아니었으면 지나칠뻔 했습니다. 

 

베들레헴 정류장에서 내려 큰 길따라 그저 걸으면 예수탄생교회가 나옵니다.

여기도 가는 길이 온통 시장통입니다. 

판매하는 상품이나 가격들도 유태인 지역과는 꽤 다릅니다. 

노상점포에서 튀김만두처럼 생긴 걸 팔기에 하나 샀습니다. 

다시 먹고 싶은 맛은 아닙니다. 

 

가게가 많으니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습니다. 

10대로 보이는 팔레스타인 소년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 중 한 소년이 내게 다가와서, 어디서 왔냐. 힘든 거 없냐고 영어로 묻습니다. 

약간은 동네 깡패같은 분위긴데, 그렇다고 내게 뭔가 위협하는 표정은 아닙니다. 

자기 구역에 온 손님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가난한 것이 누군가와 비교되는 지역일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성격이 험해지는 것 같습니다. 

  

Church of Nativity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건물이 전체적으로 하얗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건물들이 대부분 갈색계통인데 비해, 이 교회 건물 색깔은 그런 점에서 특별합니다. 

 

2세기 초 유태인들의 2차 항쟁 직후 로마는 이 곳에 아도니스 신전을 세웠는데, 4세기 초에 콘스탄틴 대제의 모친인 헬레나의 지시로 그 신전이 철거되고 이 탄생교회가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헬레나가 해놓은 일이 꽤 많습니다. 

그 당시에는 많이 알아본 후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세운 건물이지 싶습니다. 

제대로 잘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역사의 한 조각이겠지요.  

7세기 초 페르시아가 베들레헴 지역을 침공했을 때, 페르시아 장군이 이 교회의 모자이크 그림에 있는 동방박사가 페르시아 복장을 한 것을 보고 교회를 허물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건물 벽 한가운데 조그만 입구가 있습니다.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의 높이.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려면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예수탄생교회로 들어오는 작은 문

건물 내부에 들어가면 그리스 정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등잔과 그림들.   

그 안에서 예수 탄생동굴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3 미터쯤 낮은 곳에 있는 좁은 동굴 입구를 향해 사람들이 원형으로 모여듭니다. 

결코 낮지 않은 대리석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 내리막인데다가, 사람들은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습니다. 순서나 줄도 없이 모두가 각각 편한 방향에서부터 동굴 입구를 향해 모여듭니다. 

위에서 뒤에서 옆에서 마구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끝내 화가 났는지, 동굴 입구에 있던 누군가가 날카롭게 소리지릅니다. 

중국어입니다.  

실내 전체가 쩡쩡 울리도록 소리칩니다. 

이렇게 들으면, 중국어가 험한 상소리처럼 들립니다. 

내용도 그런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탄생동굴로 밀려드는 사람들

그렇게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30분 정도가 보내고 나서야, 드디어 동굴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뒤에서 계속 밀려드는 바람에 정신없는 가운데, 예수 탄생 위치를 알리는 제단 앞까지 왔습니다. 

구유가 놓였던 자리를 천천히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그저 앞뒷 사람들에게 밀려 잠깐 섰다가 자리를 물러납니다. 

무언가를 느끼고 어쩌고 할 겨를이 없습니다. 

 

탄생동굴 내 제단

제단 옆에는 또 다른 작은 동굴이 있습니다.

4세기경 교황 다마수스 1세의 친구였다는 제롬이 차기 교황 선거에서 떨어진 후, 그는 베들레헴 주변의 은둔자 공동체로 왔다고 합니다. 

제롬은 예수 탄생 동굴 옆 작은 동굴에서 라틴어 성경 번역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조금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거기 잠깐 앉아 머리와 몸을 식혀봅니다. 

 

가만있자..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마구간이라고 했잖아..

근데 이건 웬 동굴? 

그제서야, 예수님 탄생 당시에는 동물들을 동굴에서 재우고 먹였다는 글을 읽었던 게 생각납니다. 

그게 이런 거구나.  

 

지하 동굴에서 나오니, 바로 옆에 성캐더린 성당이 있습니다.  

화려하고 깨끗한 건물입니다. 

성 캐더린이 누군지 잘 모르지만, 예수님의 탄생보다 자기 자신을 더 높이 드러내고 싶어하는 건물처럼 보입니다. 

 

건물에서 나오면 넓은 광장이 있습니다. 

맹거 (Manger) 광장입니다. 

바로 옆 카페에 들어가 점심을 먹습니다. 

광장을 지나가는 다양한 인종의 관광객들이 구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천천히 햇볕을 즐기면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먹는 음식은 언제나 맛이 없습니다.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었습니다.

숙소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서 아까 내렸던 버스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타고 왔던 231번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버스가 없습니다.

구글 지도에 의하면 분명히 여기서 231번을 타고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이 때 팔레스타인 택시 기사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왔습니다. 

예루살렘 다마스커스 게이트로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일단 택시를 타고 체크포인트로 가야한다고 말해줍니다. 

검문소인 체크포인트를 지난 후에 거기서 234번 버스를 타야된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오는 버스의 번호는 231번이지만, 그 버스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갈때에는 체크 포인트 근처의 정류장에서 출발하고, 버스 번호도 234번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택시 기사는 체크포인트까지 30세켈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닌데 비쌉니다.

제 이마에 “관광객”이라고 씌어있거든요. 

   

싱갱이 끝에 택시요금을 끝내 15세켈로 깎는데 성공했습니다. 

택시 기사는 체크포인트까지 가는 동안 계속 이런 저런 관광코스를 추천합니다. 

여리고 가봤냐. 헤브론 안 가냐. 사해도 좋다. 등등..  

모두 거절했더니,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 택시요금으로 20세켈을 내라고 요구합니다. 

15세켈로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운전을 잘하기 때문이라고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댑니다. 

나중엔 소리까지 지릅니다. 

봉변 당할까 싶어 20세켈을 주고 내렸습니다. 

5세켈이면 1500원 정도밖에 안되는데, 처음부터 너무 깎지 말껄 그랬습니다. 

외국에서 겨우 몇 사람에게서 당한 경험 때문에 그 나라나 민족 전체를 싸잡아 평가하고 비난하면 안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체크포인트를 통과합니다. 

 

헤브론과 베들레헴을 여행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 와서 제일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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