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착 - 나그네의 마음

2020. 3. 11. 13:03이스라엘 성지순례

출발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국내에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모두들 서서히 걱정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홍콩 공항에서 경유하는 3시간 동안에도 가급적 외딴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여행중 고생할까봐. 

 

홍콩부터 텔아비브까지도 시간이 참 많이 걸립니다. 

좌석이 더 좁고 답답하지만, 직행을 탈껄 그랬나 싶습니다.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한 것은 아파트 문을 나선 후 거의 20시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공항은 입국심사시에도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나홀로 여행객, 그 중에서도 남자에게는 질문이 많고, 심지어 가방 수색도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입국심사대를 앞에 두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무슨 꼴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일로 받아들이자. 

분하고 억울한 일이 생겨도 참고 견뎌내자. 

 

외국에서는 이런 마음이 쉽게 생깁니다. 

말도 안 통하고, 도와줄 사람도 없고, 호소할 시스템도 모르겠고, 차라리 나 혼자 피해보고 마는 게 편리할 것 같아서입니다. 

어쩌면 그게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일껍니다. 

나그네란, 여행자란, 그런 마음으로 가는 거죠. 

주님은 내가 평소에도 그런 나그네의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실텐데, 한국에서는 그게 잘 안됩니다. 

한국에서는 주님 외에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도움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착하고 싶어하는 가인의 성향, 거기서 나만의 성을 쌓고 싶어하는 저의 본능적 성향 때문이겠죠.   

이번 여행 동안, 그런 나그네의 마음을 가능한 한 많이 연습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입국 심사는 단 5초만에 끝났습니다. 

- 어디서 왔나. 

- 코리아.  

- 뭐 하러 왔나. 

- 관광. 

심사관은 나를 쓱 훑어보고 별지 비자를 내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입국심사시에는 여권에 입국도장을 찍지 않고 별지 비자를 주는데, 이거 잃어버리지 않게 보관하는 게 더 신경쓰입니다.

 

공항 앞에서 셰루트를 탔습니다.

셰루트(Sherut)는 승객들이 꽉 차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숙소 주소를 보여주면 주소지까지 데려다 주는 합승택시입니다. 

하지만 이른 시각이라 승객들이 차고 실제로 출발하기까지는 거의 1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영어만 알면 다 통한다고 들었는데, 셰루트 운전기사는 자기에게 필요한 영어 단어 몇개만 아는 정도였습니다.

거리에서 보이는 도로표지판이나 간판은 대부분 히브리어 뿐이고, 영어가 병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상보다는 여러가지로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셰루트는 숙소 앞까지 데려다 주어 편리했습니다.

다만, 숙소의 번지수가 정확하지 않아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숙소 주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주인을 만나 따라가는데, 숙소는 몹시 허름한 건물의 3층이었고 계단이 많습니다.

아차 싶습니다. 

계단이 있는지를 사전에 체크하지 못했거든요.  

다마스커스 게이트와 가깝다는 지역적 이점만 보고 덜컥 예약했던 게 실수였나 봅니다. 

 

입구나 계단 등 모든 통로 주위에는 버려진 그릇, 플라스틱 쪼가리, 쓰레기더미 들이 가득합니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방 내부도 전반적으로 몹시 허름합니다.  

버려진 옥탑방을 급하게 개조한 느낌입니다. 

일단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지만, 후회막심합니다. 

그러나 그걸 어찌 미리 알까요. 

 

몸을 돌릴수도 없는 샤워부스 뿐 아니라, 모든 부분이 부실합니다. 

게다가 3면에 모두 커다란 창문들이 있어서 추웠습니다. 

예루살렘의 밤은 2월에도 꽤나 춥습니다.

이튿날 아침, 주인 청년에게 싹싹 빌어서, 전기 히터를 얻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추워서 샤워할 엄두가 안납니다. 

하루에 거의 9만원 가까이 지불하는 숙소인데. 완전히 속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일주일을 보내야 하다니. 

중도에 나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숙소를 새로 알아보느라 시간 뺏기는 게 귀찮기도 해서 포기했습니다. 

 

 

숙소에 앉아서, 속상한 마음으로 잠시 생각해 봅니다. 

- 이게 사람이 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잖은가.  

- 지금까지 내가 누려왔던 환경이 꽤나 안락했기에, 내 몸이 사치스러워진 것 뿐이다. 

- 하나님께서는 이번 여행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것으로부터 떠나기를 원하시나보다. 

- 내가 몸으로 부딪혀 낮아지는 연습을 시키시는가보다. 

- 춥고 좁고 온 몸이 끈끈한 날들을 통해, 그동안 사치스러워진 내 몸을 흙으로 닦으시나보다.     

- 견뎌 보자. 

- 불평하지 말자.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임을 마음 속으로 다시 되새깁니다.  

 

이스라엘 여행의 첫날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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