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카자흐스탄행 비행기

2023. 3. 15. 19:14카자흐스탄 1999

1999. 7. 28.

 

아침 9시부터 공항에 모여 부산을 떨다가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에 도착한 것은 출발시각 30분 전인 11시 경이었다. 

11시 20분쯤 되니 출발이 다소 늦어진다고 한다. 

공항 바닥에 주저 앉아 잡담을 하다가 결국 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12시 30분이 다 되어서였다. 

이 비행기도 역시 중국 영공 통과 허가를 받지 못해 러시아 상공으로 우회해야 하기 때문에, 목적지인 알마아타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10시간 정도 걸린단다. 

팀장님의 과거 경험으로는 승객들이 보통 게이트 통과후 앞다투어 뛰어 가서 좋은 자리를 먼저 차지한다고 했지만, 승객의 반 이상이 한국인이어서인지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내에 들어서니 비릿한 땀냄새가 훅 끼쳐온다. 

짐을 올려놓는 선반에는 고속버스처럼 아무 덮개가 없다.

바퀴달린 기내용 캐리어는 선반에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캐리어는 맨 뒷자리에 쌓아놓으면 된다고 하여 갖다 놓았는데, 나중에 캐리어에서 책을 꺼내려고 가보았더니 내 가방 위에는 이미 수십개의 가방들이 쌓여있어서 찾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고려인으로 보이는 앞좌석 아줌마가 러시아어를 지껄이며 자리에 털썩 앉자, 좌석 뒤에 붙어있던 철제 테이블이 자동으로 내 앞에 펼쳐진다. 의자 커버는 남루하기 그지 않다.

모든 것이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곳곳에 칠이 벗겨져 나간 것으로 보아 엄청나게 오래된 시설물임에 틀림없다. 

조금 앉아 있으려니, 천장에 맺혀있던 물이 방울방울 머리에 떨어졌다. 

비행기기 이륙하면서 기체가 기울어지지, 천장의 물방울들은 한 방향으로 일제히 움직이다가 내 옆에 앉은 조윤☐ 형제에게만 주루룩 떨어졌다. 해외여행은 처음이라는 형제가, 첫 비행기 안에서 물세례까지 맞다니. 

 

말로만 듣던 카자흐스탄행 Trans Asian Airlines. 이런 비행기가 제대로 이륙할 수나 있을까 의구심이 들 무렵, 고려인 남자 승무원이 마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시설이 다소 떨어지지만 조종실은 세계 최고"라는 자랑을 잊지 않았다.    

기내 화장실에서는 매캐한 찌릿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구인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은 무엇의 시작인지.. 

 

승무원은 고려인 남자승무원까지 세 명. 

도착할 때까지 10시간 동안 그들이 한 일은 이륙 직전 신문을 실은 카트를 몹시 빠른 속도로 밀고 다닌 것, 샌드위치와 음료를 2번 나누어 준것 뿐이었다.

앞쪽에 앉은 어느 한국인 승객이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자, 입술을 빨갛게 칠한 뚱보 여자승무원이 와서는 눈을 부라리며 러시아 말로 한동안 호통을 치고 돌아갔다. 

기내 영화나 음악 등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였다. 

 

우리는 팀장님의 제안에 따라 도착할 때까지 릴레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팀원 9명의 건강과 안전과 각기 다른 기도 제목을 위하여, 우리가 다가가고 있는 위구르인들에 대한 하나님 사역의 성취를 위하여, 이를 위한 선교사들을 위하여 계속 기도했다.

그 동안, 150명을 태운 작은 비행기는 담배냄새로 숨막히는 공간 속에서 우리를 짓누르면서 계속 서역 하늘을 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