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알마아타 도착

2023. 3. 15. 19:46카자흐스탄 1999

아침에 출발한 비행기 창으로는 계속하여 강렬한 햇빛이 쏟아졌다.

창밖으로 눈덮힌 산맥이 점점 가깝게 보이고, 꽤나 삭막해보이는 땅과, 이윽고 나무가 곳곳에 무성한 집동네가 보이다가, 비행기는 금방 착륙했다. 

어둑어둑해지는 공항 활주로를 벗어나 어느 정도 달리던 비행기가 멈추어 서더니, 엔진뿐 아니라 전등까지도 모두 꺼졌다. 

기내는 갑자기 깜깜한 찜통이 되어버렸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승객이 내리는 기색이 없다. 

창문을 내다보니, 누군가가 경찰들의 호위 아래 꽃다발을 받으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귀빈인 모양이다. 

행사가 다 끝날 때까지 우리는 깜깜한 비행기 속에서 땀 범벅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한참만에야 비로소 비행기 출입구가 열렸다. 

 

트랩을 내려오니, 유난히 험악할 얼굴을 한 경비병들이 극히 불량한 자세로 우리를 쏘아보고 있다. 

팔짱을 끼거나, 한쪽 다리를 꼬거나 총으로 땅을 짚고 서 있는 등, 가지각색이다.

그들은 명찰도 계급장도 없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 

지나치리만큼 커다란 정모가 참 위협적이다. 

 

왠지 죄지은 듯한 느낌으로 그들의 눈빛을 피하면서, 공연히 주눅든채 공항 청사에 들어섰다.

지방도시 고속버스 터미널 정도의 크기다. 

역시 숨막히듯 더운 공간이었지만, 30분 이상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입국심사 차례가 돌아왔다. 

 

특이한 것은 소지한 외화의 금액을 미리 신고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입국심사시 이 외환소지 신고서에 기재된 금액 위에 도장을 찍어주는데, 모든 종류의 외화 금액표시 위에는 이 도장을 각각 받아놓아야만 나중에 출국할 때 세관원의 시비에 휘말리지 않는다.  

도장을 찍어주는 게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외국인들은 나중에 출국할 때 엄청난 곤욕을 치르게 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입국심사대에 앉은 남녀 직원들은 눈만 빠꼼히 내어놓은 채 여권을 받아들고 뭔가를 한참동안 조사했다.

여권에 찍힌 출입국 도장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시간이 많이 걸린 걸 보아, 여권에 찍힌 각국의 출입국 도장들을 모두 면밀하게 조사하는 모양이었다.

업무를 위한 입국심사가 아니라 흥미위주로 내 여권을 구경 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무렵, 여권을 돌려 받았다.   

 

화물을 찾는 것은 또 하나의 고역이었다. 

화물은 공항 건물에서 수백 미터 가량 떨어진 창고 건물에서 찾아야 한다. 

세관 앞에서 또 한시간 정도를 기다리자, 이윽고 남루한 벽과 쇠창살로 겹겹이 둘러싸인 창고 건물의 철문이 열렸다. 

현지 한국인들에 의하면, 이 세관이 공항 건물과 멀리 떨어진 것이 세관원들의 부패를 조장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단다. 

특히 영하 수십도를 오르내리는 겨울철에는 화물을 찾느라고 밖에서 기다리는 게 어려워서, 결국 뇌물을 주고 빨리 찾아오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같은 비행기를 탔던 승객들 중 장사꾼으로 보이던 사람들은 입국심사시부터 아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뒷돈을 주고 출국 및 화물 찾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창고 문이 열리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들어가서 서로 자기 짐을 찾느라고 난리다. 

짐을 찾은 사람들은 출구에 선 세관원들과 또 실랑이를 벌인다. 

다행히도 우리는 짐을 모두 찾아내고 세관원들의 시비에 걸리지 않은 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다. 

수많은 짐 속에서 우리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카자흐스탄 여행 경험이 많은 팀장님의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짐찾을 때의 편의를 위해 우리들의 수하물은 모두 푸른색 끈으로 짐을 묶고 주홍색 리본으로 표시를 했기 때문이다. 

 

수하물을 모두 찾아내어가지고 공항 밖으로 나온 후에야, 드디어 카자흐스탄 알마아타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달은 밤하늘을 덮은 검은 줄구름 사이로 떠올라, 왠지 독특하면서도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초승달은 아니었지만, 모슬렘의 상징인 저 달이 이 땅에서 빛을 발하지 못해야 할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몇 가지의 불편이나 짜증나는 일로 인하여 이 땅을 미워하거나 멸시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 마음을 지켜주시기를, 그리고 이 땅의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우리도 갖게 해달라고 , 모두 함께 기도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공항 밖으로 나온 우리들을 맞이한 사람은 강 선교사였다. 

위구르 이름은 미흐리굴. 

위구르 말로 "친절한 꽃"이라는 의미인데, 위구르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란다. 

까르르 하는 그녀의 유난스러운 웃음소리와, 누구와도 금방 친숙해질 수 있을 것같은 인상과, 모든 것을 품에 안을 것 같은 눈을 가진 그녀는, 참으로 맑은 영을 가진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우리는 미흐리굴이 준비한 봉고차에 짐을 싣고 숙소를 향했다. 

영국 선교사 가족이 함께 휴가를 떠난 동안 우리가 머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단다. 

밤 한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는데, 환한 미소를 띤 위구르 아줌마 "루비야 헤데"가 튼튼한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그녀는 저녁을 먹지 못했을 우리를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 

피망 속에 밥, 고기를 다져 넣고 이를 국물에 삶아낸, 특이한 종류의 만두국이다.

토마토와 오이를 썰어 시큼한 양념을 한 반찬과 빵을 곁들이면서, 팀원들 모두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알마아타에 도착한 첫 날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