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크라스나폴라와 할머니

2023. 3. 16. 13:29카자흐스탄 1999

크라스나폴라는 "붉은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위구르인 마을이다.

가을에 붉은 들꽃이 피면 온 들판을 덮어 땅 전체가 붉게 보이기 떄문에, 그로 인해 생겨난 지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단다. 

 

크라스나폴라는 실로 가슴아픈 지역이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폐허같은 마을, 모두 잠든 것 같은 마을, 아무 소망도 생기도 없는 사람들의 마을, 이런 것들이 처음 느낀 인상이었다. 

이제는 예수밖에 이들을 도와줄 존재가 없고, 예수만이 유일한 소망이 된 이 가난한 상황이, 오히려 그들에게 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서 만나는 어린이와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모두들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이었다. 

손길가지 않은 척박한 들판지역에 그나마 몸을 뉘일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카자흐스탄 국기에 까지 그려진 그 뜨거운 태양이, 위구르인들을 삶의 밑바닥부터 지치게 만든 것 같다.

 

호기심과 살아있는 표정을 가진 것으로 보인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 앞뒤를 오가면서 무언가 말을 걸기도 하고 계속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던 어린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총명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고, 나중에는 내가 길에 흘린 카메라 렌즈후드를 주워다 주기도 했다.

소년의 삶 속에 주님의 말씀과 은혜가 가득 채워지게 되기를 기도했다. 

 

우리는 크라스나폴라의 어느 극장터 앞에서도 기도했다 

전에는 결혼식장으로도 사용되었다는 이 건물은 지금 당구장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커다란 공터를 낀 마을의 중심지여서, 교회로 사용되기에 너무나 적당한 장소였다. 

우리는 이 곳이 이 지역에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중심지가 될 것을 위해 기도했다. 

 

우리는 크라스나폴라의 어느 학교 앞에서도 기도했다. 

이 곳 학생들은 1학년부터 11학년까지 한 학교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마약 등의 범죄와 성적 문란이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급속도로 확산되어 왔다고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 학생들이 빠지게 될 범죄로부터 보호하여 주시고 그들에게 주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그들로부터 기독교 지도자가 나오게 될 것을 위해 기도했다.  

 

돌아오던 길에서, 뙤약볕 아래 짐보따리 여러 개를 들고 가는 할머니를 만났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은 고려인인지 카작인인지 심지어 위구르인인지 조차 구별하는 게 어렵다. 

그 할머니는 우리에게 뭐라고 많은 말을 했다. 

거의 러시아 말인 듯한 말을 따발총 쏘듯이 계속하는 가운데, 놀랍게도 우리는 그 할머니의 말 속에서 "감자 사가지고"라든지, "어디서 왔니" 등의 분명한 한국어 발음을 들을 수 있었다. 

러시아어를 하는 팀장님의 도움으로 들어보니, 85세의 고려인 할머니란다. 

매우 어릴 때 블라디보스톡에 갔다가 60년전에 카자흐스탄으로 오게 되었단다.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정책으로 이주하게 된 분들이다. 

얼굴에 패인 깊은 주름이 그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과거를 증명하고 있었다. 

 

성씨가 최가라는 바람에 더욱 반가와서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잠시 거절했다가 갑자기 수줍은 표정으로 바뀌면서 짐을 내려놓고 머리를 매만진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카메라로 감추면서, 할머니의 사진을 많이 찍어드렸다.

할머니는 굳이 우리를 자기 집 앞까지 끌고 가서는, 여기가 내 집이니 사진을 꼭 보내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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