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단기선교 여행의 시작

2023. 3. 16. 12:59카자흐스탄 1999

눈을 뜨니 아침 8시. 

팀원들 모두 피곤했던 모양이다.

한국시간으로는 오전 10시.

비행기로 10시간이나 걸려 날아왔는데 한국과의 시차가 2시간밖에 나지 않는다는 게 희한하다.

 

창밖을 내다보니 우선 눈덮힌 거대한 산 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중국과의 경계인 텐샨산맥이다.

카자흐스탄 위구르인들이 떠나온 곳, 중국 신장이 그 산 너머에 있단다. 

신장에는 약 900만명, 카자흐스탄에는 약 100만명의 위구르인들이 살고 있다. 

 

주변에는 몹시 남루한 아파트들 뿐이다. 

창문 틀을 보니 한 오십년은 족히 되었을 것 같다. 

바깥에는 정리되지 않은 나무 몇 그루, 흙바닥, 그리고 버려진 듯한 자동차 몇 대가 보인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미흐리굴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일주일간의 일정과, 위구르인들의 문화, 그들의 현재 생활, 그리고 그들의 기본 언어 몇가지를 배웠다. 

 

위구르인들은 수백년 동안의 꿈인 자신들의 독립국가 건설을 실현시켜줄 정신적 지주가 이슬람교라고 믿는다.

애국심은 곧 이슬람교와 연결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위구르인들은 철저한 모슬렘이 아니면서도 스스로를 모슬렘으로 인식하고 있다.  

 

카자흐인들과 마찬가지로, 위구르인들은 러시아를 몹시 배척한다.

러시아 지배의 상징은 러시어 정교이고, 러시아 정교는 예수 그리스도나 십자가 상징되는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실이 위구르인들 사이에 알려지게 되면,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받고, 그들로부터 왕따가 된다. 

 

카자흐스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1991년 이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카자흐인들이 정치권력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위구르인들 사이에서는 카자흐인에 대한 불만 또한 팽배하게 되었다.

각자가 모두 소외와 가난에 시달려온 그들은, 결국 서로에 대하여도 시기, 분열, 그리고 미움이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경제적 궁핍은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

유부남녀간의 문란한 성적 관계는 생활비 충당의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 주님을 영접한 어느 위구르 자매는 유부남과의 오래된 관계를 청산하기로 결단했는데, 그로 인해 자식들을 먹여살릴 생활비 상당부분을 채우지 못해 심한 곤란을 겪고 있단다.

결단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럭저럭 먹고 사는데, 그들은 당장 생활 곤란을 겪는 점에서 현실적 갈등이 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그들에게 적절한 일거리를 주고 그 삯을 지급하곤 한다. 

 

우리는 "아쌀럼 알레이굼(안녕하세요), 라흐멧(감사합니다), 호쉬(안녕히 가세요)" 등의 위구르어를 열심히 외우면서 위구르에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